People
-
도로 설계에 바친 35년, 길 위에 새긴 열정의 시간 | 조영제 유신 교통인프라부문 사장(건설시스템공학과) 1966년 설립된 종합 엔지니어링 업체인 ㈜유신은 도로·공항·철도 등 교통시설 설계 분야에서 국내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 조영제 사장이 있다. 사원으로 시작해 도로부 사장에 오르기까지 35년간 ‘교통 인프라 설계’ 외길을 걸어온 그는 없던 길을 만들어 단절된 공간을 잇고, 도시의 풍경을 바꾸었다. 그에게 길은 열정의 결과물이자 삶의 동력이다. 엔지니어에게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엔지니어상’ 수상지난해 연말, 그는 겹경사를 맞았다. 한국 엔지니어링협회가 주관한 ‘제4회 대한민국 엔지니어링 대상’ 시상식에서 유신이 주관한 ‘동탄역 수직 도시 공간 개발 조성 프로젝트’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고, 프로젝트의 사업총괄책임자였던 그는 ‘올해의 엔지니어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업계에 들어온 지 35년 만에 엔지니어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며,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시설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신에서 일한 덕분에 얻은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경기 동탄신도시는 1기와 2기 신도시가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있었어요. 걸어서 5분 거리인데 고속도로를 우회해야 하고, 생활 인프라 격차도 벌어지는 등 주민들의 불편이 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수직 도시 공간 개발 조성 프로젝트’예요. 경부고속도로와 철도를 지하화하고 그 위를 공원과 첨단 교통 허브로 재창조하는 국내 최초의 복합 인프라 조성 사업이죠. 제가 이 프로젝트를 맡을 때 마흔두 살이었는데 올해 60이 됐어요(웃음). 설계에서 시공까지의 기간도 18년 가까이 걸렸고, 총 사업비도 3조 7천억 원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동서를 잇는 연결 도로들이 개통되면서 도시가 합쳐지고, 생활이 편리해졌어요. 도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수직 도시’, 공간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다 기획, 설계 단계에서 그가 참고한 것은 미국의 ‘보스턴 빅딕 프로젝트’였다. 빅딕 프로젝트는 보스턴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을 공원과 녹지로 조성해 교통과 도시 단절 문제를 해결한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업으로 꼽힌다. 그는 보스턴을 방문해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만났고, 아이디어를 얻으며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 나갔다. 국내 첫 수직 도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하 시설을 살펴보면 맨 아래에 SRT와 GTX가 지나는 고속철도가 있고, 그 위에 열차와 버스가 연계된 환승 시설, 그리고 그 위에 고속도로가 지나는 구조예요. 고속도로 바로 위 지상은 대형 선형 공원이고요. 이런 시설들이 평면적으로 쭉 펼쳐지는 게 수평 도시라고 한다면 이건 철도, 환승 시설, 도로, 공원을 아래에서부터 입체적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수직 도시라고 불러요. 혐오 기피 시설은 모두 지하로 들어가고 우리 눈에는 쾌적한 공원만 보이는 거죠. 주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토지 지가 상승, 고용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도 무척 커요. 현재 서울, 부산, 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공간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외국에서도 이 혁신적인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해외 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사원에서 사장까지, 최초·최연소 기록으로 일군 ‘성공 신화’ 이 밖에도 그가 관여한 굵직한 프로젝트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묻자 그는 2021년 개통한 ‘서부간선 지하도로 민간투자사업’를 꼽았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과 금천구 독산동을 연결하는 10.33km 길이의 서부간선 지하도로는 국내 최초의 ‘대심도 소형차 전용도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소형차 전용도로에 대한 기준이 없었어요. 이 프로젝트 이후 국토부에서 ‘앞으로 이런 도로를 만들어야 하니 설계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집필자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지하 80미터 깊이의 대심도 터널로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널리 알렸고, 이를 계기로 국내 민자사업 분야에서 업계 독보적인 선두 주자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없던 기준을 만들어가며 설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개인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성과였어요.”이처럼 여러 프로젝트에서 세운 ‘최초’의 기록은 직장 생활에서도 이어졌다. 1995년 사원으로 입사해 과장 시절 이미 기술사(도로 및 공항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40대 초반에 임원이 되었다. 그에게는 늘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3년 전 사장 승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일이 즐거워요. 돈을 받지 않아도 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월급까지 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늘 그런 마음으로 일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즐겁게 일하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성장해 있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이런 태도와 마음가짐을 강조합니다.”그는 “굵직한 국책 사업이 완성됐을 때 현장에서 느끼는 자부심은 이 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자 매력”이라며, “전국 곳곳 도로 준공석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볼 때마다 뿌듯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덧붙였다. 명문 대학으로 발전한 모교 자랑스러워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말에 전문대 토목공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유신에 입사했다.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는 30대 중반,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03년 서울과기대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 나갔다. 학부 졸업 후에는 한양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학교생활에 대한 별다른 추억은 없지만 모교에 대한 애착은 아주 커요. 현재 동문모임인 어의기술사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학교에도 자주 갑니다. 김동환 총장님도 가끔 뵙고,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님들하고도 잘 지내요.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도 하고요. 전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로 설계 실무와 관련된 내용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막상 질문을 받아보니 ‘유신에 어떻게 입사할 수 있는지’를 더 궁금해하더라고요(웃음).” 후배들이 느끼는 취업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선배로서, 학과 후배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의 사장으로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학점 관리와 영어 실력, 그리고 관련 자격증 취득이다. 그는 “우리 회사만 해도 해마다 신입사원 경쟁률이 50:1이 넘는 현실에서 수많은 지원자를 서류 단계에서 계량화할 수 있는 지표는 결국 이런 요소들”이라며,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잘 만들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교가 날로 발전해 제가 명문 대학 졸업생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국립대학으로서 발전 가능성이 더욱 크기 때문에 머지않아 대학 순위 10위권 안에 진입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동문으로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 ===== 공통 기사 레이아웃 =====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80%; /* 1) 화면의 80% */ max-width: 900px; margin: 0 auto; /* 가운데 정렬 */ padding: 0 1rem 3rem; box-sizing: border-box; } /* 본문 텍스트 공통 스타일 (p, span, div 모두)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margin-top: 0; margin-bottom: 0.9em; font-size: 1rem; line-height: 1.7; word-break: break-word; /* 2) 텍스트가 화면 밖으로 안 튀게 */ overflow-wrap: anywhere; /* 너무 긴 단어/영문도 자동 줄바꿈 */ } /* 가운데 정렬은 그대로 유지 (이름, 사진 캡션 등)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center"],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center"] { text-align: center; } /* 이미지: 항상 기사 폭 안에서만 보이도록 */ .seoultech-article-wrapper img { display: block; width: 100% !important; /* 사진 폭 = 기사 폭 */ height: auto !important; margin: 0 auto 1.5rem; } /* ===== 반응형 ===== */ /* 태블릿 */ @media (max-width: 1024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90%; } } /* 모바일 */ @media (max-width: 768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100%; padding: 0 1.2rem 2rem;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font-size: 0.95rem; line-height: 1.7; } } /* ===== 줄바꿈 자연스럽게 / 괄호 문제 해결 =====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word-break: normal !important; overflow-wrap: anywhere !important; letter-spacing: -0.01em; } /* 한국어 justify 정렬 최적화 */ .seoultech-article-wrapper { text-align: justify; text-justify: inter-character; } 2026.02.10
-
서로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꿈꾸는 예술가 | 홍승혜 명예교수(조형예술학과) 작가 홍승혜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서로 다른 것들이 부딪히지 않고 둥글게 공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미술로 실험해 온 예술가이자, 유연한 교육철학으로 차세대 작가들을 양성한 교육자다. 그가 걸어온 궤적에는 포용과 공생의 가치를 작품과 삶으로 구현해 낸 중재자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과 파리를 거쳐, 교육자로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보낸 시간까지. 다양한 세계를 유기적이고 유희적인 언어로 연결해 온 홍승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서울과 파리를 거쳐 예술가로 자라다홍승혜 교수에게 예술은 유년 시절부터 멀리 있지 않았다.“일요일 아침 아버지가 레코드를 틀던 기억, 소파에 푹 파묻혀 좋아하는 동화책을 열 번, 스무 번씩 읽던 기억이 나요. 어려서부터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했고 초·중·고 내내 미술반이었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파리 국립미술학교로 건너간 그는 다양한 대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굳혔다.“첫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랑스인 할머니 댁에서 함께 지냈는데 정말 아름다운 집이었어요. 할머니께서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이후에도 프랑스에 갈 때마다 찾아뵙는 사이가 됐죠.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의 문화를 흠뻑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의 정서와 문화가 제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그는 마티스를 ‘사부님’이라고 부르며, 형태·색채·예술가의 태도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특히 니스 근교 방스(Vence)의 로사리오 성당에서 본 마티스의 작업은 그의 인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세라믹 벽화, 성직자의 의복, 십자가까지. 성당 전체를 하나의 조형 언어로 ‘노래하듯’ 구성한 마티스의 방식에서 그는 “삶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예술로 노래하는 사람”의 자세를 보았다. 예술이 치유이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이때부터 분명해졌다. 대부분의 동료가 파리에 남아 활동하던 중, 그는 아버지의 병환으로 귀국했다. “지금 돌아보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 잡고, 작품 활동과 더불어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서른다섯 살,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교수로 임용되며 두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회화에서 픽셀로의 전환홍 교수의 작업 세계에서 1997년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붓과 물감을 내려놓고, 픽셀을 재료로 창작한 작품을 선보인 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90년대 중반에 학교 전산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교수들에게도 컴퓨터를 줬어요. 저는 완전 기계치여서 6개월 동안 모니터만 쳐다봤죠. 그러다 타자 연습을 하려고 들어갔는데, 거기서 ‘그림판’을 발견한 거예요.”물감을 개고, 붓질하고, 말리는 과정으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회화 작업과 달리 디지털 드로잉은 신속하고 정확한 ‘기계 맛’이 있었다. “그때 깨달았죠. 아, 나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보다, 픽셀을 벽돌 삼아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구나.” 그는 저해상도 포토샵 픽셀들을 쌓아 올려 건축적 도형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도형들이 모니터 바깥 다양한 재료들과 만나 평면, 입체, 가구 등의 형태로 탄생했다. 이때부터 픽셀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최소 단위가 되었다.‘유기적 기하학’의 세계 – 공존을 꿈꾸는 중재자의 미학유기적 기하학, 2000, 국제갤러리픽셀을 통해 구축되기 시작한 홍 교수의 작품 세계는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유기적 기하학’은 문자 그대로예요. 유기적—불안정한 생물의 속성과, 기하학—견고한 인공의 원리가 만나는 지점이죠. 기하학에 생로병사의 법칙을 적용하면 결과는 늘 예측 불가능합니다.”우연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작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만나게 되는데,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계획된 지점보다 훨씬 흥미로운 결과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기하학적 도형들을 사운드에 맞춰 안무하는 영상 작업의 경우, 대본 없는 춤을 내키는 대로 출 때와 같은 자유로운 순간들이 있죠. 작업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물도 대체로 만족스럽습니다.”불안정한 유기체와 견고한 기하학처럼,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상태들이 공존하기를 바라는 태도가 바로 그가 추구하는 예술과 삶의 지향점이다. 1997·2000·2002년에 걸쳐 전시된 <유기적 기하학> 연작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 전체로 뻗어 나가는 뿌리가 되었다.6성 리체르카레, 2009, <음악의 헌정> 전시 전경, 갤러리2그에게는 음악도 또 하나의 언어이다. “색(음색), 크기(볼륨), 리듬, 속도 같이, 미술과 많은 용어를 공유하고 있더라고요. 특히 추상미술에서는 형식이 곧 내용인데, 특히 형식미가 뚜렷한 바흐의 푸가 같은 음악에 내재한 변주와 반복, 대칭과 전복의 질서는 제 작업 방식과도 닮아 있어 많은 영감을 줍니다.” (좌)봄이 오면, 2023, 국제갤러리 (우)꼬마 우주비행사, 2023, 국제갤러리25년간 지속했던 픽셀 작업 뒤에는 곡선과 사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찾아왔다. “정사각형 격자라는 ‘감옥’에서 산 셈이죠. 물론 행복한 감금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곡선과 사선을 다루고 싶더라고요.” 작업 도구는 포토샵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재료는 픽셀에서 벡터로 확장됐다. 추상 중심에서 구상적 이미지와 이야기로 확장되며 작업은 더 유연하고 풍부해졌다. 가장 단순한 도형들로 구성됐던 과거 작품들과 달리, 이제는 인지 가능한 형태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령, 2023년 열린 <복선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에서 전시된 ‘홍당무’라는 작품은, ‘홍당무’라 불렸던 자신의 별명을 표현한 자화상이다. 나아가, ‘봄이 오면’에서는 흩날리는 꽃잎과, 여러 젠더의 인물을 형상화했다. “여여 커플도, 남남 커플도, 남녀 커플도 있어요.” 무지개색이 스며든 공간은 서로 다른 층위가 포개져 만들어내는 공존의 풍경을 보여준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간을 지배하지도, 공간에 지배받지도 않는다.” 묘하게 긴장을 이루며 공존하는 상태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을 꿰뚫은 감상평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허락한다’는 말도 그에게 인상적인 비평으로 남아 있다. “작품은 추상이지만, 결국 작가의 태도를 담고 있어요. 제가 작업을 제 삶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노력한 건 아니지만, 그게 드러났을 때 알아봐 주신 통찰력에 놀랐어요.”그가 창작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분명하다. “창작이 저를 즐겁게 하고 또 타인을 즐겁게 할 때입니다. 제가 느낀 기쁨이 관객에게서 ‘나눠지는’ 순간이 가장 기뻐요.” 그래서 그의 작업엔 ‘재미’가 중요한 미덕이다. “저는 흥미를 느껴야 진실해지거든요. 유희적인 예술의 힘이 있다고 믿어요.”격 없는 우정을 쌓은, 과기대에서의 시간홍 교수의 공존의 미학은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깊어졌다. 1993년 9월, 디자인과 예술을 선도하는 우리 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 부임해 지난 2021년 2월 퇴직할 때까지, 그는 27년 간 학생들에게 친근한 ‘쌤’으로 불렸다. “학생들과 진짜 친구처럼 지냈어요. 조형예술학과가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였거든요.” 수업 방식도 관계 중심이었다. “학생들에게는 날카로운 피드백과 너그러운 태도, 두 가지가 다 필요해요. 저는 야단맞은 학생들을 달래주는 편이었죠.” 조형대학이 차세대 유망 작가들을 배출하며 예술가 성장의 요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와 같은 교육자가 마련한 따뜻한 토양이 큰 역할을 했다.동시에 그는 현실적인 조언자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같이 발견해 주는 것이 선생님으로서 제 역할이었죠. 불필요한 좌절을 피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자기를 알면 별로 두려운 게 없거든요.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게 최선이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말하죠.” 그는 학생들을 ‘친구’이자 ‘무서운 관객’이라 부른다. “저는 그들의 성장을 돕는 선생님이었지만, 그들 또한 저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젊은 시선은 늘 새로우니까요.” 그는 미술대학을 ‘편견과 위계 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가르치고 미술적 갈등을 해결하는 곳’이라 여기며, 평생의 동료들을 만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홍 교수는 조심스레 새 꿈을 꺼내 보였다. “프리미어 같은 편집 도구를 배우고 싶어요. 제가 다뤄온 영상·애니메이션·평면·입체를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일상 가까이 스며드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이모티콘처럼 유희적이면서 유기적인 것, 박제되는 예술 말고, 살아 있는 예술을 하고 싶어요.” 그의 예술은 늘 ‘살아있는 것’을 향해 열린 채 앞으로 나아간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명작보다 일상에 스며드는 경험을, 서로 다른 존재들이 지배하거나 지배받지 않고 나란히 서 있는 상태를 추구한다. 지금까지 그가 픽셀과 색채, 그리고 학생들과의 우정으로 구축해 온 세계가 앞으로 더 생명력 넘치는 장면들로 채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 ===== 공통 기사 레이아웃 =====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80%; /* 1) 화면의 80% */ max-width: 900px; margin: 0 auto; /* 가운데 정렬 */ padding: 0 1rem 3rem; box-sizing: border-box; } /* 본문 텍스트 공통 스타일 (p, span, div 모두)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margin-top: 0; margin-bottom: 0.9em; font-size: 1rem; line-height: 1.7; word-break: break-word; /* 2) 텍스트가 화면 밖으로 안 튀게 */ overflow-wrap: anywhere; /* 너무 긴 단어/영문도 자동 줄바꿈 */ } /* 기존 코드에 align="justify"가 있어도 강제로 왼쪽 정렬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span[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p[style*="text-align: 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div[style*="text-align: 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span[style*="text-align: justify"] { text-align: left !important; } /* 가운데 정렬은 그대로 유지 (이름, 사진 캡션 등)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center"],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center"] { text-align: center; } /* 이미지: 항상 기사 폭 안에서만 보이도록 */ .seoultech-article-wrapper img { display: block; width: 100% !important; /* 사진 폭 = 기사 폭 */ height: auto !important; margin: 0 auto 1.5rem; } /* ===== 반응형 ===== */ /* 태블릿 */ @media (max-width: 1024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90%; } } /* 모바일 */ @media (max-width: 768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100%; padding: 0 1.2rem 2rem;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font-size: 0.95rem; line-height: 1.7; } } /* ===== 줄바꿈 자연스럽게 / 괄호 문제 해결 =====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word-break: normal !important; overflow-wrap: anywhere !important; letter-spacing: -0.01em; } /* 한국어 justify 정렬 최적화 */ .seoultech-article-wrapper { text-align: justify; text-justify: inter-character; } 2025.12.02
-
울릉공항부터 GTX까지, 기술과 완벽함으로 | 나기선 고덕종합건설 회장(환경공학과) 올해로 설립 37주년을 맞은 고덕종합건설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꼽힌다. 창업주인 나기선 회장은 스물여덟의 나이에 맨손으로 회사를 설립,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켰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원칙을 지키며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온 우직함은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의 인생 여정은 ‘성공한 사업가’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한, 깊이와 울림이 있다. 20대, 주경야독하며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린 시간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사장님이 되는 것’이었다. 충남 예산의 시골 마을,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넉넉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며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가슴에 새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일을 시작했고, 동시에 학업도 놓지 않았다. 건축학과 야간 학부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이어갔다. 건축학과를 마친 뒤에는 환경공학과로 편입해 건축과 환경을 두루 공부했다. 입대 시기가 다가오자, 공병대에 자원했다. 몇 달간 혹독한 환경에서 고생한 끝에 공사 전반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를 맡았다. 당시 군 복무 기간은 30개월, 힘들기는 했지만 현장 노동자와 감독자의 업무를 두루 익힌 귀한 시간이었다. 전역 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당, 수도원 공사 감독 자리를 얻었다. 타고난 성실함과 꼼꼼한 일 처리로 신뢰를 얻으며 독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마침내 1988년, 고덕의 전신인 청도주택(1993년 ‘고덕’으로 사명 변경)을 창업하며 꿈을 이뤘다. ‘일 잘한다’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10년 동안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며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IMF를 전후해 많은 기업이 부도를 막지 못했고, 그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건설공제조합에 그가 연대 보증을 섰던 3개 회사가 연쇄 부도로 쓰러지면서 모든 채무를 떠안게 된 것이다. “제가 갚아야 할 돈이 총 15억 원 정도 됐어요. 지금 화폐 가치로 따지면 100억 원도 넘는 엄청난 액수였죠.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저는 건실하게 잘 운영하고 있었는데, 다른 회사 문제로 이렇게 되니 상심이 컸죠. 주변에서는 폐업을 권했어요. 개인 간 채무 관계가 아니라, 회사가 문을 닫으면 채무 이행 의무도 소멸하거든요. 대신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라, 저는 제 이름에 그런 불명예를 남기고 싶진 않았어요. 결국 10년 동안 분할해서 내기로 건설공제조합과 합의하고 그 빚을 다 떠안았어요.”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보고 정도를 지키다 당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기업 중에는 ‘억울한’ 채무 이행을 피하고자 폐업하고, 가족 명의로 신규 사업자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는 편법을 택하는 대신 정도를 걸으며 스스로 세운 삶의 가치를 지켰다. 그 선택이 결국 회사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IMF 사태 후 침체한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공사를 발주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관급공사 입찰 공고가 올라오던 시절, 편법으로 신규 사업자가 된 업체들은 이전 공사 이력을 인정받지 못해 입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 반사이익까지 더해져 고덕건설은 날개를 달았다. “연대보증 문제로 힘들었을 때 ‘폐업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따랐다면 지금의 고덕은 없었을 거예요.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손해가 나더라도 멀리 보고 의리와 정도를 지키는 게 성공의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은 계기였습니다.” 오랫동안 그를 짓눌렀던 부채는 예정된 기간을 앞당겨 전액 상환했다. 이후 17년 연속 은행 무차입 경영, 신용평가 A0 등급 유지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왔다. 많은 기업이 신용등급 하락을 경험한 작년에는 오히려 A+로 상향 조정됐다. 창업 당시 두 명이던 직원은 현재 100여 명에 이르고, 지난해 매출은 1,370억 원에 이른다. 올 8월 기준 수주액만 해도 이미 2,500억 원을 넘겼다. 창업 초기부터 한결같이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답고 튼튼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첨단기술과 접목한 ‘스마트 건설’로 변화 그동안 고덕건설은 도로, 교량, 철도, 학교 등 관급공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 기반 시설 위주로 성장해 왔다. 최근에는 첨단기술과 접목한 ‘스마트 건설’에 주력하며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에 수주한 전남 완도·고흥 모듈러 소규모 공공임대주택이 대표적인 사례다. 모듈러 주택은 집의 구조물을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방식이다. 고덕건설이 짓게 될 ‘15층 아파트’는 국내 최고층 모듈러 주택으로, 내년 5월 착공 예정이다. ‘바다를 메워 활주로를 만드는’ 울릉공항에도 시공사로 참가하고 있다. 소형 항공기 전용인 울릉공항은 환경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최첨단 기술이 도입돼 착공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소형 항공기의 경우 활주로의 길이가 최소한 1,200m가 돼야 합니다. 그 길이를 확보하기 위해 10층 아파트 규모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바다에 넣고 암석을 채운 뒤 땅을 만들었어요. 이걸 케이슨 공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공항에는 처음 적용됐어요. 새로운 시도인 만큼 저희에게도 좋은 경험이고, 보람도 큽니다.” 성공의 열매를 사회와 나누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통해 꾸준히 성장한 고덕건설은 2005년, 성북구 동선동에 14층 사옥을 준공하며 회사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가 기부를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자신의 성공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생각해 성과를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신장암으로 한쪽 신장을 떼 내는 대수술을 한 뒤로 나눔에 관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모교인 충남 예산고에 장학금을 낸 것을 시작으로 모교인 서울과기대, 석사과정을 한 고려대 등에 발전기금 및 장학금을 기부했다. 사랑의 열매에도 1억 원을 기부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회사가 위치한 성북구와 고향 예산군에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해마다 천만 원씩, 20년 넘게 온정을 베풀고 있다. 서울과기대 후배들과 직접 만나는 ‘고덕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프로그램에 선발된 10명의 학생을 회사로 초대해 총 천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한편,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들려주며 학생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또한, 제16대 및 17대 서울과기대 총동문회장으로 봉사하며 동문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코로나 시기에 중단됐지만, 대대적인 동문 만남의 장을 기획하는 등 동문 간 결속을 다지고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요즘은 ‘우리 애가 서울과기대 다닌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부모들이 많아졌어요. 학교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변화 속에서 저희가 이번에 하이테크관, 스마트기술동 건축을 맡게 됐어요. 건설업에 몸담으면서 언젠가 모교 건물을 멋지게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 왔거든요. 미래형 캠퍼스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게 돼 무척 설렙니다.” 평생 해온 일임에도, 그에게 건축은 여전히 즐겁고 신나는 일인 듯했다. 일 이야기가 나올 때면 눈빛은 더 반짝였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 안에서 20대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대학 생활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너무 많다”라며 웃었다. “낮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야간에 수업을 듣느라 동아리 활동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어요. 대학생일 때 해보지 못한 게 많아서 아쉬움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 후배들에게 ‘4년간 많이 배우고, 도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아라.’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다시 오지 않을 귀한 시간을 소중히, 알차게 사용하길 바랍니다.” 2025.08.27
Lab&Studio
-
AI영화 제작 플랫폼을 꿈꾸다 | 박구만(스마트ICT융합공학과)·최영희(문예창작학과) 교수 융합연구팀 생성형 AI는 사회 모든 분야를 놀라운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영화 제작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AI의 도움으로 공학자가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도, 기술을 모르는 창작자가 영상을 구현할 수도 있다. 서울과기대 AI영화제작연구팀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연구팀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AI 영화 제작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에는 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AI 단편영화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연구팀을 이끌며 융합 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박구만·최영희 교수를 만났다. 18개월 동안 10여 편의 작품 발표 AI영화제작연구팀은 2024년 6월, 스마트ICT융합공학과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을 모아 만들었다. 한쪽은 첨단 기술 분야에, 한쪽은 전통적인 창작 영역에 속해 공통분모가 없었던 두 학과 학생들은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손을 맞잡았다. 팀원들은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1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대규모 자본으로만 가능했던 영화 제작이 AI로 어느 정도 대체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하며 영화 제작의 지평을 넓혔다. 그중에서도 특수 효과가 핵심 요소인 SF 영화 제작에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최근엔 애니메이션, 숏폼, 다큐멘터리, 각색물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서울과기대 상상관에서 열린 작품전시회에서는 외부 관계자들로부터 ‘대학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특별한 협업을 구상한 사람은 박구만 교수였다. 그는 “우리 학교는 문예창작학과, 조형대학, 인공지능 관련 학과, 스마트ICT융합공학과 등 테크노미디어 분야의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며, “생성형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서 공학자와 창작자들이 모여서 융합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박 교수의 제안을 받은 문예창작학과에서도 곧바로 호응했다. 박 교수와 함께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최영희 교수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영화 제작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기술 분야와의 공동 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며, “박 교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한다.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융합적 역량을 다지다 학교에서도 이들의 협업을 전폭 지원했다. 덕분에 연구팀이 만들어진 지 6개월만인 2024년 12월에 첫 작품을 선보이며 순항을 예고했다. 연구팀은 6개월 단위로 새로운 기수를 모집해 현재 3기가 활동 중이다. 팀원은 20여 명, 대부분 학부생이지만 대학원생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만나 작업과 토론을 이어간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기술을 몰라도 도구를 통해 상상을 구현하고, 공학도들은 시나리오의 구조를 이해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처럼 서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융합적 역량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장 큰 장점이다. 두 교수에게도 이번 협업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박 교수는 “오래 기억에 남을 융합 연구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원하던 작업을 할 수 있었다”며 협업 파트너인 최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어떤 부분은 직접 도구를 개발하면서 콘텐츠를 만들어갑니다. 이걸 ‘파인 튜닝(Fine Tunning)’이라고 해요. 서구형 데이터를 학습한 생성형 AI가 놓치기 쉬운 것들, 가령 콘텐츠에 담긴 한국적인 요소라든가 특정 캐릭터, 원하는 연출 방식 등의 데이터를 추가 투입하면서 우리 스타일에 맞게 만드는 거죠. 그런 점에서 융합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구들의 발전 속도가 정말 빨라요. 연구팀이 만들어진 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기 때 작품과 3기 때 작품을 보면 변화가 확연히 느껴집니다.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실제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박구만)“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저도 배운 게 많아요. 일반적인 영화 시나리오 기법과는 조금 다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AI 제작 환경에 맞는 시나리오 창작을 고민하게 됐어요. 또, 기존의 시나리오를 실사 영화로 촬영할 때 느끼는 한계가 AI 환경에서는 많지 않아 창작의 범위가 넓어지는 즐거운 경험을 했어요. 무엇보다 혼자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문예 창작도 첨단 기술 분야와 협업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최영희)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상력의 근원은 결국 사람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올해 AI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AI 영화 분야에서 시나리오, 연출, 제작이 모두 가능한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 공동 작업이 교과 과정으로 자리 잡아 우리 학교의 대표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 꿈을 향해 이미 첫발을 내딛은 두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런 당부를 전했다. “지금은 협업과 융합의 시대입니다. 문학을 한다고 해서 글만 쓰고, 영상을 한다고 해서 카메라만 고집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미디어, 어떤 기술과 결합했을 때 가장 효과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스토리, 영상, 미학, 공학적 지식까지 인접 분야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수록 우리가 파고들 수 있는 창작의 깊이도 넓어질 것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와 상상력은 결국 인간에게서 나옵니다. AI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되 끌려가지 말고,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되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려 하지 말고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바랍니다.”두 교수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매개로 형성되는 ‘함께 만드는 과정’의 가치였다. AI라는 새로운 도구는 영화 제작의 문턱을 낮췄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연구팀의 활동은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전공, 다른 언어를 쓰던 학생들은 AI영화제작연구팀 안에서 협업을 배우고, 각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작을 시도해왔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연구팀에서 활동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답을 들어봤다. Q. AI영화제작연구팀에 참여하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송윤정(문예창작학과) - 문예창작학과를 본 전공으로 시각디자인학과 복수전공, 웹툰창작학과 연계융합전공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창작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게 해준,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문채영(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 ‘내 상상이 구현된다’가 아니라 ‘내 상상보다 더 근사하게 구현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김에스더(문예창작학과) - 처음에는 AI 툴을 사용하기 위해 공대팀의 여러 학우들과 소통하면서 사용하는 언어와 사고 방식이 달라 마치 다른 세계를 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김기범(문예창작학과) - 공대생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았는데 기술적인 면에서나 작업하는 면에서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이강희(스마트ICT융합공학과) - 영상을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점 차이가 크고 그 반응들이 만드는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힌트가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발표 후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제 의도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재해석되는지 확인하며 소통하는 영상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지은(문예창작학과) - 영상 제작에서 스토리보드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시나리오와 짧은 지문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모든 컷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명확한 프레임 설정이 선행돼야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연구팀 분위기는 어떤가요송윤정 – 적당히 학구적이고 다들 열정적입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 늘 감사해요. 김에스더 – 문창과 팀과 공대 팀으로 나뉘어 있지만 각자의 전문 영역을 공유하며 협업하는 분위기입니다. 서로 다른 전공이 만나 새로운 방식의 영화 제작을 실험할 수 있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이강희 – 발표 자리가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아 팀의 분위기는 아주 좋아요. AI영화제작연구팀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술 활용 사례를 넘어, 대학에서 융합 교육이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공학과 창작, 이론과 실습, 개인 작업과 팀 프로젝트가 유기적으로 엮이며 학생들은 새로운 방식의 영화 제작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배움은 하나의 작품 완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창작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그 기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힘은 변하지 않는다. 서울과기대 AI영화제작연구팀이 그려가는 실험과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 공통 기사 레이아웃 =====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80%; /* 1) 화면의 80% */ max-width: 900px; margin: 0 auto; /* 가운데 정렬 */ padding: 0 1rem 3rem; box-sizing: border-box; } /* 본문 텍스트 공통 스타일 (p, span, div 모두)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margin-top: 0; margin-bottom: 0.9em; font-size: 1rem; line-height: 1.7; word-break: break-word; /* 2) 텍스트가 화면 밖으로 안 튀게 */ overflow-wrap: anywhere; /* 너무 긴 단어/영문도 자동 줄바꿈 */ } /* 가운데 정렬은 그대로 유지 (이름, 사진 캡션 등)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center"],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center"] { text-align: center; } /* 이미지: 항상 기사 폭 안에서만 보이도록 */ .seoultech-article-wrapper img { display: block; width: 100% !important; /* 사진 폭 = 기사 폭 */ height: auto !important; margin: 0 auto 1.5rem; } /* ===== 반응형 ===== */ /* 태블릿 */ @media (max-width: 1024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90%; } } /* 모바일 */ @media (max-width: 768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100%; padding: 0 1.2rem 2rem;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font-size: 0.95rem; line-height: 1.7; } } /* ===== 줄바꿈 자연스럽게 / 괄호 문제 해결 =====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word-break: normal !important; overflow-wrap: anywhere !important; letter-spacing: -0.01em; } /* 한국어 justify 정렬 최적화 */ .seoultech-article-wrapper { text-align: justify; text-justify: inter-character; } 2026.02.10
-
느리게, 소재와 과정의 미학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 김대용 교수와 ‘소재와 표현’ 스튜디오 서울과기대 캠퍼스 아늑하고 깊은 안쪽에 도예대학의 다빈치관과 도예실습실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대학 중 최대 규모인 가마 앞에서 소성(가마에서 불로 굽는 작업)을 위한 작업을 기다리며 작품 이야기에 몰입 중인 그들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예작가인 김대용 교수(도예학과)와 그의 제자인 <소재와 표현> 스튜디오 학생들이다.<광주요>부터 <생로랑>까지, 한국 산업 도예의 새로운 시그니쳐, 김대용 교수지난 5월, 헐리우드의 유명 오마카세 레스토랑 ‘스시 파크(Sushi Park)’와 명품 패션 하우스 생로랑(Saint Laurent)의 콜라보레이션이 미디어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번 콜라보의 히든 카드는 도예가 김대용 교수의 도자 테이블웨어 콜렉션이었다. 생로랑에서 공감각적인 예술의 정점을 표현하기 위해 그에게 협업을 청한 것. 김 교수가 선보인 미니멀한 미학의 도자 테이블웨어 시리즈는 심미적인 가치와 실용성을 완벽하게 담아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이번 작업에 대해 “도자의 물성과 미감을 통해 식사의 감각적 몰입을 높이고자 하였다”고 소개했다.한국을 대표하는 도자 브랜드 광주요의 디자인연구소장 출신으로도 유명한 김대용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서 도예학과(도예 전공) 석사와 미술연구과(도예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예의 특징을 묻자 그는 일본의 특징적인 ‘느린 문화’에 오히려 장점이 있다고 대답했다. “느림 가운데 ‘과정을 존중하는 미학’이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을 좇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아름다움의 본질로 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일본에서의 공부를 통해 ‘시간과 과정 속에서 본질을 탐구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작품의 형태보다 재료의 반응, 유약의 흐름, 가마속의 불의 길과 같은 보이지 않는 과정들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시선은 지금도 그의 작업과 교육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도 저는 도예는 느림과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느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에요.(웃음)”산업과 예술의 교집합에 서서, 소재와 과정의 이야기를 탐구하다 그는 도예 브랜드 광주요의 디자인 연구소 연구소장으로 일하다가 서울과기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도 화제를 모았다.“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도자 산업을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배웠지만, 광주요의 현장은 전혀 달랐어요.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도자기를 단순 상품을 넘어 기호품으로 다루고 있었고, 예술이라는 도자기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었죠. 그곳에서 경험을 통해 도자기는 시대의 문화를 제안하는 매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산업과 예술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얇다고 말합니다.” 요즘 그가 주로 하는 작업은 식기와 다구. 일상 속에서 자주 쓰이는 물건에 조형적인 언어와 감각이 담고자 한다. 생로랑과 콜라보에서도 테이블 웨어에 재료와 과정의 미학을 최대한 표현하려 했다. 흙의 질감과 유약의 흐름, 소성(가마에서 불로 굽는 작업)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다.“차(茶) 도구는 차를 즐기는 사람에게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형태는 물론, 손에 닿는 사용감, 기물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이야기까지요. 차를 마시며 그 형태를 바라보고, 재료의 질감과 불의 흔적을 느끼는 순간이 곧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작업에서 재료와 제작 과정의 서사가 관람자와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흙이 변화하는 시간, 유약이 녹아 흐르는 과정, 불이 남긴 흔적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기물의 조형과 감각 속에 스며들죠. 작품은 결과물보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산업과 예술의 교집합에 서서, 소재와 과정에 집중하다김대용 교수가 이끄는 스튜디오에 이름, ‘소재와 표현’ 에는 소재를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의 진솔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도예라는 작업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흙을 다루는 태도, 과정을 대하는 마음이 작업의 깊이를 결정하죠. 완성된 형태에 담긴 감정까지 모두 그 사람의 성정과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 랩의 학생들은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가졌지만, 한결같이 도자 재료와 제작 과정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재료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손의 흔적과 감각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 스튜디오의 자랑입니다. 스튜디오의 방향은 교수가 정하지만, 스튜디오의 색은 학생들이 만들어요. 각자의 감각과 태도가 모여 ‘소재와 표현’이라는 이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세계 최강, 서울과기대 도예학과김대용 교수에게 서울과기대 도예과의 강점이 무엇인지 묻자, 주저없이 “7명의 교수님들이죠!”라고 대답했다.“다들 정말 개성들이 강하신데 저는 그것이 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야도 정말 다양한데 각각 그 분야에서 자신만의 탤런트를 갖고 일가를 이루는 분들입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교수진입니다. 덕분에 학생들도 제가 깜짤 놀랄 만큼 우수하고 좋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게다가 시설과 인프라까지 최강이니까요. 정말 좋은 젊은 작가들이 자라고 있다는 기대와 자부심이 있습니다”<소재와 표현> 스튜디오 미니 인터뷰, 우리 스튜디오는요박지민 | 연구조교저는 내러티브 작업보다는 흙이 열과 물질에 따라 변하는 과정, 도자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컸습니다. 학부 때부터 교수님의 수업을 꾸준히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연구실에 들어오게 되었죠. 도자 작업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그만큼 결과로 돌아오는 보람도 큽니다. 흙이라는 재료는 정직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손을 들였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김대용 교수님께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재료를 이해하고 스스로 실험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며, 결국 그 축적이 자신만의 작업 언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주희선 | 대학원 3학기우리 연구실은 ‘자유롭지만 집중적인’ 곳이에요. 각자 자기만의 리듬으로 작업하지만, 작업을 하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피드백을 주는 구조입니다.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존중하는 것이 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또 스튜디오 학생들끼리 소모임이 활발하게 유지되는 편입니다. 함께 공모전이나 전시 사업에 지원하기도 하고, 전시 관람을 하기도 합니다.구희정 | 석사 과정 연구생저는 기숙사에 살아요. 8시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캠퍼스 산책 길을 통해서 작업실에 도착합니다. 9시에는 가마를 확인하고, 11시까지는 준비 작업을 합니다. 그 시간이 조용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작업에 집중할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오후에는 수업을 듣거나 작업을 하고, 저녁 7시부터 남은 작업을 하거나 수업 준비, 또는 이론 수업 과제를 해요. 작업실 바로 옆에 기숙사가 있어서 이동 시간을 줄이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규모가 큰 동기의 작업을 다같이 가마실로 옮겼을 때요. 여러 사람이 정말 힘과 마음을 합해서 조심조심 옮겼거든요. 가마에서 작업이 잘 나왔을 때 다들 너무 뿌듯했어요. _ 하은(석사 과정)밤새 작업했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혼자보다 다 같이 작업하면 훨씬 덜 버겁습니다. 중간중간 야식을 시켜 먹으며 잠깐씩 쉬기도 하고, 그 시간들 덕분에 작업실이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를 버텨주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_ 지민전시 상하차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겁고 깨지기 쉬운 작품들을 옮기느라 다들 진이 빠졌지만, 서로 도와주며 해낸 것이 감동이었어요. _ 희정우리 스튜디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 한 마디도자라는 매체와 재료의 특성을 살려 작업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연구실 내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고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서로 작업의 원동력을 얻고, 서로가 자극이 되어 더 열심히 하는 곳입니다._ 희선재료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도 많고 때로는 막막한 순간도 있지 만, 그 시간을 통해 재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진심으로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싶다면, 김대용 교수님 연구실에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_ 하은 /* ===== 공통 기사 레이아웃 =====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80%; /* 1) 화면의 80% */ max-width: 900px; margin: 0 auto; /* 가운데 정렬 */ padding: 0 1rem 3rem; box-sizing: border-box; } /* 본문 텍스트 공통 스타일 (p, span, div 모두)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margin-top: 0; margin-bottom: 0.9em; font-size: 1rem; line-height: 1.7; word-break: break-word; /* 2) 텍스트가 화면 밖으로 안 튀게 */ overflow-wrap: anywhere; /* 너무 긴 단어/영문도 자동 줄바꿈 */ } /* 기존 코드에 align="justify"가 있어도 강제로 왼쪽 정렬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span[align="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p[style*="text-align: 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div[style*="text-align: justify"], .seoultech-article-wrapper span[style*="text-align: justify"] { text-align: left !important; } /* 가운데 정렬은 그대로 유지 (이름, 사진 캡션 등) */ .seoultech-article-wrapper p[align="center"], .seoultech-article-wrapper div[align="center"] { text-align: center; } /* 이미지: 항상 기사 폭 안에서만 보이도록 */ .seoultech-article-wrapper img { display: block; width: 100% !important; /* 사진 폭 = 기사 폭 */ height: auto !important; margin: 0 auto 1.5rem; } /* ===== 반응형 ===== */ /* 태블릿 */ @media (max-width: 1024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90%; } } /* 모바일 */ @media (max-width: 768px) { .seoultech-article-wrapper { width: 100%; padding: 0 1.2rem 2rem;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font-size: 0.95rem; line-height: 1.7; } } /* ===== 줄바꿈 자연스럽게 / 괄호 문제 해결 ===== */ .seoultech-article-wrapper p, .seoultech-article-wrapper span, .seoultech-article-wrapper div { word-break: normal !important; overflow-wrap: anywhere !important; letter-spacing: -0.01em; } /* 한국어 justify 정렬 최적화 */ .seoultech-article-wrapper { text-align: justify; text-justify: inter-character; } .seoultech-article-wrapper p:last-child, .seoultech-article-wrapper div:last-child { margin-bottom: 0 !important; } /* ✅ line-height 0.5 + 7pt 같은 '빈 줄' 완전히 숨기기 */ .seoultech-article-wrapper p[style*="line-height: 0.5"], .seoultech-article-wrapper p span[style*="7pt"] { display: none !important; margin: 0 !important; padding: 0 !important; } 2025.12.02
-
세계 보행 로봇 기술의 미래가 바로 이곳에서 | 김정엽 교수와 HRR Lab 서울과기대 프론티어관 901호, 휴머노이드 연구실 김정엽 교수와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4족 보행 로봇의 시뮬레이션이 한창이다. 넓은 랩 공간에서 개발, 시험 중인 2족, 4족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의 로봇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김정엽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 특히 보행 로봇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가 이끄는 Humanoid Robot Research Lab(HRR Lab)에서는 인간과 유사한 외형과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보행 로봇 연구를 진행한다. 4족 견마형 로봇, 6족 방사형 로봇, 절단 장애인들의 보행을 위한 로봇 의족 등이 이 연구실에서 개발 및 완성되는 중이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돕는’ 로봇을 연구하다, 김정엽 교수 김 교수는 학부 4학년, 졸업 논문을 위해 도출한 수학적 모델과 프로그램 코드가 실제로 유명 중견 기업의 임팩트 해머 드릴 시제품에 적용되게 되었을 때, 연구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 혼다사의 첫 번째 휴머노이드 아시모가 공개되며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로봇 연구에 몰입했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휴머노이드 휴보의 개발에 참여, 이족 보행 알고리즘 개발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해낸 바 있는 그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계의 1세대에 해당한다. 이후 우리 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에 부임해서 그의 열정적인 연구는 더 큰 날개를 달았다. “로봇을 연구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수적이에요.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희 랩은 총 3개실의 충분한 연구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대학원생(16명)들이 자랑입니다. 그 결과 계속되는 수상과 논문 실적도 자랑이고요. 또한 과제 수주를 통한 넉넉한 연구비도 있습니다. (웃음)” 김 교수와 HHR 랩은 지난해 국제 Intelligent Service Robotics 저널에서 Best Paper Award 2등 상을 받았다. 올해 대한기계학회 국내 저널 최우수논문상도 수상하는 등 HRR랩은 국내에서 보행 로봇 직접 제작하고 제어하는 자타공인 탑티어 연구실로 꼽힌다. 그가 꿈꾸는 HRR Lab의 비전은 가까운 미래에 1가구 1로봇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인간과 대등한 지능, 모빌리티, 작업 능력을 갖춘 다목적 보행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작업을 보조하고 도와주며 위험한 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을 연구 개발하는 것. 그래서 소방 현장 구조나, 해저 수중 탐색 등 꼭 필요하지만 인간이 하기엔 위험한 일들을, 인간을 대신해서, 인간처럼 잘 해낼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그와 제자들의 목표다. 그는 서울과기대가 가진 풍부한 연구 인프라와, 젊고 실력 있는 교수진, 특히 공학(엔지니어링)과 디자인(설계) 분야가 활발하게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저희 과(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같은 경우는 기계 시스템과 디자인의 협업이 굉장히 잘 돼서 시너지를 크게 일으킬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학과입니다. 기계와 디자인의 융합으로부터 좀 더 인간 생활에서 좀 더 친숙하고 활용 가치가 높은 어떤 기계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 철학이고, 우리 학교에는 이를 위한 굉장히 좋은 여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희 과 안에는 기계 전공뿐 아니라 산업 디자인 전공의 교수님도 계시거든요. 실제로 디자인 전공자들과 다양한 논의를 해보니, 예상보다 더 훨씬 더, 생각의 전환이 많이 되더라고요. 학교 전반에서 이런 재미있는 융합과 시너지의 기회가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카이스트 박사 과정 때 협업하던 디자인과 박사 과정생이었던 김원섭 교수님께서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님으로 오셨어요. 그때도 공학도와 디자인학도로서 함께 작업하면서 엄청나게 치고받고(?) 싸우다가 친해졌었죠.” 그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랩에서 다양한 로봇 기술을 몸소 체험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또 동시에 랩 동료들과 즐거운 추억거리를 젊음의 자산으로 충분히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다. “저도 대학원생으로 랩 생활을 오래 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늦은 새벽까지 연구하고 실험하느라 늘 야식을 먹었고, 살찌는 것을 막기 위해 랩 동료들과 헬스장, 인라인 스케이팅, 권투 등을 같이 열심히 다니기도 했죠. 실험실 15주년 행사 때, 노래를 작사 작곡해서 동료들과 합주실에서 기타치고 드럼 치며 녹화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제가 대학 때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기타리스트를 꿈꾸기도 했거든요. (웃음) 젊음을 보내는 시간인 만큼, 지식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많은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얻어 가길 바랍니다.” HRR Lab 24시, 대한민국 탑티어 보행 로봇 랩 연구실에서는 소방/국방 4족 로봇 팀, 트랜스포머 2족 국방 로봇 팀, 험지 복합 구동 로봇팀, 국방 수중 로봇 팀 그리고, 로봇 의족 팀 등이 나뉘어 인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위하고 돕는 로봇들을 개발한다. 출퇴근 시간은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하지만 퇴근 시간은 자유로운 편이다. 자율과 책임, 그리고 효율이 강조되는 분위기이므로 각자의 방식에 따라 시간을 활용한다. 출근 후 개인 연구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오후에는 팀별 연구와 실험을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매주 2회 교수님과 대면 랩미팅이 있고, 이때 학생 개인마다 꼼꼼한 지도가 이뤄진다. 랩원들을 입을 모아 연구실의 단합이 자랑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마치고 함께 보드게임카페에 가거나, 밖으로 나가 풋살 등 함께 운동하는 시간도 정기적으로 가진다. 연례행사인 연구실 전체 MT도 중요하다. 올해 초에는 일본 후쿠오카로 해외 MT를, 지난 7월에는 경상도로 여름 MT를 다녀왔다. 또한 중요한 것은 종종 “소고기 회식”을 갖는다는 것. 한 랩원은 “교수님께서 회식과 MT에 아주 긍정적이시다”라고 제보하기도. 원활한 소통,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은 연구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선순환을 낳는다. HRR Lab 미니 인터뷰, 우리 랩을 소개합니다 여명훈 (랩장, 박사과정) HRR Lab에서 랩장을 맡고 있고, 이족 보행 로봇과 험지 복합구동 로봇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휴보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로봇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교수님 연구실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족 보행 로봇으로 보행을 구현한 것도 뿌듯했지만, 교수님과 함께 연구개발 계획서를 작성하여 우리의 연구계획과 아이디어로 연구과제를 수주했을 때 성취감이 컸습니다. 정성조(석사과정 2년 차) 트랜스포머 2족 국방 로봇 팀 소속으로, 2족 보행 로봇(Bipedal Robot)의 설계 및 제어 알고리즘 개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의 하드웨어 설계와 제어 알고리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설계와 제어를 함께 다루는 연구실은 많지 않았고, 그 점에서 HRR Lab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과의 첫 면담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확신을 가지고 이 연구실을 선택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연구실의 이족 보행 로봇 STOB_V3의 설계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5월에 설계를 마무리했고, 최근에는 실제 제작까지 완료했습니다. 설계 당시 고려했던 요소들이 실제 제작과 구동 과정에서 잘 반영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성재(석사과정 1년 차) 이번 가을학기에 석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되었으며, 학부 연구생 때부터 4족 보행 로봇의 보행 연구를 하고 있으며 현재 소방 인명 탐지 로봇 정부 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보행 로봇을 연구하고 싶어서 HRR Lab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연구에 진심이고 항상 모르는 것을 물어보라고 하셔서, 배우기가 좋은 환경입니다. 특히 학부 연구생 때부터 로봇을 직접 받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며, e-class와 세미나 자료, 선배님들의 가이드가 잘 정리되어 있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막막함이 적습니다. 시뮬레이션에서 만든 로봇 제어 알고리즘을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오류를 수정한 후 로봇이 잘 걸어 다니고 외란을 극복할 때 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HRR Lab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한마디 우리 연구실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관심 있는 학부생, 석박사 입학 희망자분들은 연락 주세요. 그리고 연구실 유튜브 채널도 있으니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명훈) https://www.youtube.com/@hrrlabonair4404 로봇 분야는 배워야 할 것이 많아 바쁘지만,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있거나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 연락처를 통해 문의하시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성재)로봇 분야는 광범위하므로 학부 연구생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해요. 직접 연구에 참여하면서 흥미와 적성에 맞는 세부 분야를 좁혀가는 과정이 연구자로서 큰 도움이 됩니다. (성조) 2025.08.27
전기정보공학과 김종찬 동문(13학번), 2025년도 국가공무원 5급 기술고시 (방송통신직렬) 최종 합격
2026.02.10화공생명공학과 이은호 교수 연구팀, “AI 인공 시냅스 핵심 원리 규명… 국제학술지 ACS Nano 표지 논문 선정”
2026.02.10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유승훈 교수, ScholarGPS ‘Highly Ranked Scholars 2025’ 선정
2026.02.10SeoulTech-KIRAMS 의과학대학원 2026학년도 전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및 공동 심포지엄 개최
2026.02.10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반도체소부장 혁신융합대학사업단, '2025 WE-Meet 프로젝트 경진대회' 2등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상 수상
2026.02.10